지금부터는 “인구” 라는 개념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차대전이후 ‘성장.발전’ 이라는 개념은 세계속으로 희망처럼 퍼져나가며,
마치 하나의 진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구’라는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었고,
자본주의와 세계화 라는 틀속에서 어느정도의 위상을 차지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구’를 뜻하는 영어 Population은 가난하고 교육수준도 한참이나 떨어지는
제 3세계 나라의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또한 국경을 넘어 난민촌으로 사람을 몰아넣는 압력을 연상케 하기도 하며,
과잉인구와 출산조절, 피임, 낙태, 식량부족과, 각종 전염병 등의 무언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이고, 당장의 위협이 되는 불안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19세기말 제임스 머레이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Population의 뜻을 사전 한단을 할애해서
설명을 했는데, 그 뜻은 원래 동작을 나타내는 ‘명사’ 였다고 합니다.
예를들면, 잉글랜드 국왕이 “이 나라들의 Population을 막으려고 기를 썼다!” 라는 예문이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오는데, 여기서 Population은 식민, 곧 사람을 심어놓거나
들여앉히거나 해서 어느 곳에 살게 한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Population은
아직까지는 동사에 가까운 명사였다는 것입니다. 잉글랜드가 식민지에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는 뜻이므로 Population은 생물학적 사람의 정착과 생산행위를 가르켰습니다.
또한 좀더 전문적인 의미로서의 Population은 맬서스에 의해 사용됩니다.
“Population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식량은 산술급수로 늘어난다”, 그리고 잉글랜드 역사학자
토머스 머콜리(Thoams Macauley)는 “1685년의 잉글랜드 Population은 꼬집어 정확하게
따질수가 없다!”라고 말했고, 심지어 멘델은 콩의 ‘분홍색 Population’, ‘파란색 Population’ 등처럼‘군집’ 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했었습니다. 이렇듯 Population은 살아있는 사람의 의미가
핏기없는 사물같은 하나의 관리의 대상으로 환원되면서 우리에게 ‘인구’라는 개념으로 주입되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관계의 상징’속에서 개인의 가족사를 확대해 민족사를 만들어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인구’라는 담보된 객관성으로 흡수되면, 내재된 민족사의 깊이를 따져보기도 전에 유엔(UN)의 국가별 소득분포와 이름모를 질병 감염률이 어느 등급수준인가를 표시해 줄뿐입니다.
이것은 인구라는 개념이 통계와 만나면서부터 ‘행동’의 형식을 달고 ‘확률’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판이후 약 80년 뒤에 간행된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에서는 Population의
새로운 의미가 덧붙으면서 분량도 두단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원래 ‘식민하다’라는 ... 곧, 사람을 어디에 살게 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Populare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동작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이후로는 사람과의 관련성을 더 이상
찾을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Population은 이제 규정된 확률로 만나서 짝짓기를 하는 번식군집을 가르키며,
모기나 파리 에게도 쓸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는 특정한 에너지 상태로 존재하는 입자를
가르키기도 하며, 천문학에서는 공처럼 생긴 구상성단(globular cluster) 안의 별들과
확연히 다르게 은하들의 중심부에 있고, 금속을 풍부하게 함유한 별들이 이루는 집단을
가르키기도 합니다. 또한 형벌학 같은 데서는 재소자 중에서 가석방 집단과 수감자 집단을
구별하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증보판]에는 네 번째 구역도 생겼는데, 이 안에는 -census(조사), -control(조절), -cycle(주기), -distribution(분포), -explosion(폭발), -growth(증가), -policy(정책), -pressure(압력), -survey(조사) 같은 복합어가 포함 되었습니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서 흔히 볼수있는 복합어들 입니다.
더불어 학생들에게는, Population이 통계와 만나면서부터 각종변수들을 자연스럽게 다룰수있게
만들었습니다. 인구규모와 영양상태, GNP, 인플루엔자(influenza) 감염률, 식량자급, 자살률 등
주어진 숫자들과 산출된 그래프를 다루다 보면, 나중에는 종속변수를 제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사람을 관리할수도 있겠다고 믿게 만듭니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와 정치권으로 전이되면서
좀더 복잡하게 수정되고 변형되어, 이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알아들을수 있는 상태까지
도달합니다. 그리고 유엔(UN)에서 만든 좀더 정교하고 다양한 항목들을 빈칸없이 채우기만 하면
이젠 국제적인 비교까지 가능해지고, 여기서 정부는 산출된 다양한 결과물들을 취사선택해
국민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사용목적은 당연히 ‘공익(公益)’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려 하지만, 인구(Population)는 번식하고, 오염시키며, 소비하고 낭비합니다. 즉, 통제할 필요가 있는 당위적 대상인 것입니다.
1959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출산 조절은 우리의 업무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보다 더 정치권이나
정부 본연의 활동과 기능, 책임과 거리가 먼 주제를 나는 달리 떠올릴 수가 없다!“
그로부터 고작 10년이 지난 1969년 7월에 닉슨 대통령은 인구에 관한 첫 번째 대통령 교서를
발표했습니다. “행정부는 알찬 지도력을 제공할 분명한 책임을 받아들인다!” ... 라며
미국과 세계인구의 증가와 가족계획 필요성에 대해서 논하였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당시 미국대표로 유엔에 나가있던 조지 부시는 1973년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오늘날 인구문제는 더 이상 사적문제가 아니다! ~ 이제
(인구는) 국가 지도자와 국제 지도자들의 관심을 받아야 한다!”
출산조절에 대한 아이젠하워의 불간섭 정책이 닉슨에게는 가족계획으로 수정되고,
부시에게는 인구문제로 귀결되어 버렸습니다.
인구의 폭증을 뜻하는 ‘과잉인구’ 문제는 195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저개발 국가들의 기아, 질병, 폭력적인 무질서 등은 상당한 위협이 되었고, 이에 따라
‘인구조절’을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출산조절이 거론되고, 여성운동가들과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와 각종 공중보건 조직들이 합세하면서 출산조절은 이제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변모해 나갔습니다.
더불어 1977년 114개의 저발전 개발도상국 에서는 경제성장을 위한 인구조절 업무를
중앙정부의 기획예산부서에 맡긴 나라가 83개국이나 되었습니다.
“중세의 흑사병 이라든가 우리가 아직 정체를 모르는 오늘날의 질병과는 달리 과잉인구 라는
현대의 흑사병은 우리가 발견한 수단과 우리가 보유한 자원으로 해결할수 있다!“
- 마틴 루터 킹 -
20세기 초에 콘돔(condom)은 원치않는 임신이나 매독같은 성병의 위험으로부터
개인들이 안심하고 쾌락을 추구할수 있게 해주었습니다.(참고로 번식이 아닌 쾌락만을 위한
섹스를 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60 ~ 1970년대의 ‘인구폭발’ 이라는
새로운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주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교배속도에서
선진국을 앞서가던 저개발 국가들에게 콘돔(condom)은 정부의 정책적인 공중보건 조치,
그 이상의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구(Population)의 새로운 정의 때문에
개인의 성행위에까지 공공부분에서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암묵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의 성행위에 공공부분의 간섭이 좀더 국제적으로 드러나게 된것은, 1958년 스웨덴의
국제원조 였습니다. 스웨덴은 처음에 스리랑카를, 그리고 파키스탄을 도왔습니다. 또한
‘가족계획을 위한 지원’ 이라는 원조사업의 명칭은 ‘성행위간섭’ 보다는 상당히 순화된
표현 이었습니다. 이어서 1966년에는 유엔총회에서 ‘인구지원’ 이라는 합의에 도달하고,
이 합의는 콘돔, 자궁내 피임 장치, 피임약, 카르만 튜브(피임도구), 미국대학의 인구학과,
국제 인구관련조직 등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이어졌습니다. 1961년부터 1979년 동안 유엔의
‘인구지원’ 합의에 대한 지원금 총액은 연간 9600만 달러에서 4억5500만 달러까지 늘어났고,
이것은 1979년의 공적개발원조 규모 260억달러의 약 1.7%에 달하는 금액인 것입니다.
앞서 얘기한 종속변수를 제어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숫자와 그래프를 다루면서 사람을 관리하게
될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인구학자들과 경제학자들에게는 정부가 지키고 따라야할 하나의
원칙과 규범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제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1969년 새로운 피임수단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수백만쌍의 커플이 하루빨리 내밀한 성행위 습관을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에 압박을 가했습니다. 다시말해 인구의 크기를 기술로 얼마든지 조절할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인류학자들은 이에 대해 반박을 합니다. 한 지역과 국가의 인구조절은
뿌리깊은 ‘인습’ 때문에 그리 큰 효과를 볼수가 없다고 합니다. 인습에 변화가 오려면, 대체로
사랑과 욕정의 경험, 여성다움의 문화적 의미, 여성 몸에 대한 태도, 사적행위가 일어나는 맥락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학적으로 인구사업은 성장과 발전의 과정에서 태어난 가장 오만한 분야라 말합니다. 공장과 댐, 학교는 그 무엇을 반드시 증명하지 않아도 각각 일자리와 킬로와트, 퇴학생 등을 만들어 냅니다. 더불어 술파제(세균성,바이러스성 질환의 치료제), 페니실린 등은 적은 돈만으로도 사망률을 줄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크기의 값싼 피임도구의 보급은 문화의 중심기둥이 주저앉은 다음에야 비로소 출산율에 영향을 줄것입니다. 또한
자급농에게는 자식이 많은 것이 재산이므로 가족규모를 조절하려는 것은 이치와 맞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금수입에 차츰 기대게 된다면 많은 자식을 먹여살리는 습속을 버리게 될것이다“(조금은 단순한 가정입니다.^^)
중국을 제외하고, 과거의 가족계획 혹은 출산조절 등의 과정에서 보급된 살정제와, 피임약,
각종피임기구 들이 출산율을 떨어뜨리는데 상관관계나 인과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아직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미국이 1990년대 초반 강력범죄로 몸살을
앓았는데, 그 이후 급격하게 범죄율이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살인범죄율은
3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합니다. 이부분에 대해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은 1973년 1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로 인한 낙태 합법화가 범죄를 잠재웠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인구조절에 대한 계획은 ‘낙태합법화’로 인한 범죄율 하락 이라는 부분적 성과도 만들어 내긴 했습니다.
핏물이 다 빠진 ‘인구(Population)‘를 미분하면
75조개의 세포와 200여개의 뼈, 600개가 넘는 근육,
무려 15만 킬로미터의 펄펄끊는 혈관을 가진 개인(사람)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인구’ 즉!
“Population”은 우리에게 성행위를 간섭하고
폭발적 증가가 아닌, 그 자체로서 우리를 위협해오고 있었습니다.
<자료참고 - 통계청, 反자본 발전사전, 괴짜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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