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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 에드워드 권은 요리 스타를 필요로 하는 미디어와 홍보가 필요한 요식 산업이 손잡고 만들어낸 캐릭터였다. 그의 경력이 허위로 밝혀진 다음에도 방송은 그를 ‘세계적인 셰프’로 소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QTV의 <예스 셰프> 홈페이지 화면. 에드워드 권. 우리나라 요리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름이다.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QTV <예스 셰프> 시즌2는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릴 글로벌 스타 셰프를 뽑는다는 명분을 내세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도전자를 한 명씩 탈락시킬 때마다 에드워드 권이 던지는 멘트가 있다.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에드워드 권이 젊은 도전자의 요리사 명찰을 뜯으며 독설을 퍼부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허위 경력, 수정 않고 변명만
2010년, 한창 영화 <트루맛쇼>를 만들고 있을 때 나는 에드워드 권의 학력과 경력 부풀리기에 대해 듣고 취재를 시작했다. 영화 <트루맛쇼>는 맛의 프레임으로 본 미디어에 대한 영화고, 우리의 7성급 셰프는 맛과 미디어의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완소’ 캐릭터였다. 에드워드 권이 근무했던 호텔에 취재 요청 전자우편을 보내고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그가 갑자기 <조선일보>를 통해 커밍아웃해버렸다. 에드워드 권을 떠받쳐온 경력 중 하나는 미국 최고의 요리학교인 나파밸리 CIA를 수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이 학교를 “e러닝 코스에서 수료했다”는 것이다. “워낙 바쁘게 일하다 보니 6주 과정의 인터넷 강좌를 장장 2년에 걸쳐 수료했다”는 해명은 참으로 옹색했다. 그는 2008년 11월 발간한 자서전 <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에서 “(나파밸리에서) 나는 요리를 다시 공부했다”고 소회를 밝힌 일도 있었다. ‘미국요리사협회가 선정한 젊은 요리사 10인’에 선정됐다는 이야기도 사실은 샌프란시스코·나파·새너제이 지역 요리사 친목단체에서 ‘우리도 젊은 요리사 한번 뽑아보자’고 해서 선정됐다는 허무한 경력이었다. ‘2006년 두바이 최고 요리사’상을 받았다는 경력도 두바이 지역별 요리대회에서 그가 근무하던 페어몬트 호텔팀이 수상했는데 그 팀의 리더에게 주어진 상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셰프 오브 더 이어’(Chef of the Year)였단다. 버즈알아랍 호텔 총주방장이란 보도도 자신은 분명히 헤드셰프라고 말했는데 기자가 잘못 알아듣고 오보를 낸 거라고 빠져나갔다. 한마디로 자기는 거짓말하지 않았는데 기자나 PD가 무식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얼버무린 셈이다. 그의 권위를 지탱해주던 경력들이 다 거짓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는 부풀려진 자신의 학력과 경력을 바로 수정하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했지만 실력만은 진짜라고 주장한다. 허위 경력으로 커온 사람들이 들통 나면 늘 써먹는 레퍼토리다. 게다가 그동안 허위 경력을 이용해 얻은 인기와 명성은 모른 체하고 “내가 기자회견 해서 대중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할 만큼 대단한 인물인가”라며 돌연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캐릭터 상품
우리나라에서 에드워드 권의 요리를 먹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의 요리는 미디어가 대신 먹어보고 보여준 이미지로 전달됐고, 대중이 그를 소비한 건 요리 실력 때문이 아니라 화려한 경력의 스타 셰프란 권위 때문이다. ‘미국요리사협회가 선정한 젊은 요리사 10인’ 중 한 명이며 ‘2006년 두바이 최고 요리사’상을 받은 ‘7성급 요리사’란 권위를 눈과 귀로 먹는 거다. 미디어는 스타를 팔아 돈을 번다. 스타가 없으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 한다. 셰프는 맛을 다루는 사람이지만 스타 셰프는 맛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이름값과 비주얼만 받쳐주면 스타의 캐릭터는 미디어가 창조한다. 맨 처음이 중요하다. 누군가 훤칠한 키에 시원시원한 말투를 가진 젊은 요리사를 화려한 학력과 경력으로 펌프질한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의 결정체란 점에서 에드워드 권은 영화 <트루맛쇼>에 나오는 캐비아 삼겹살 같은 존재다. 한 맛집 소개 방송에서 만들어낸 ‘캐비아 삼겹살’이라는 요리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삼겹살에 세계 3대 진미라는 캐비아를 얹었으니 방송이 원하고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이 됐다.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는 열을 가하지 않고 신선하게 요리해야 한다는 정보는 무시당했다. 알고 보니 그게 한 통에 3천원짜리 럼피시 알이라는 진실은 돼지에게나 던져줘라. 비싼 캐비아의 미세한 품질까지 구분할 수 있는 고감도 혀는 대한민국에 몇 없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TV를 보는 사람도 캐비아 맛을 제대로 모르는데 뭐 럼피시 알이면 어떤가. 그냥 까만 알이면 된다.
나는 캐비아 삼겹살을 본 프랑스 셰프의 감동적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TV 맛집 프로그램에 협찬을 대주는 브로커의 놀라운 상상력 앞에 코르동 블뢰 셰프도 꼬리를 내렸다. 세상에 이렇게 크리에이티브가 철철 넘치는 요리도 가능하구나. 이건 계급 갈등에 대한 조롱을 담은 퍼포먼스이자 한식 세계화의 열정으로 빚어낸 퓨전 요리 혁명이다. 우리는 이 캐비아 삼겹살이란 말도 안 되는 메뉴가 30번 이상 방송에 나왔지만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 하는 멍한 나라에 살고 있다. 한국방송 시청률을 10%만 잡아도 500만 명이 봤다. 그중엔 기자도 있었을 텐데 “저건 사기다, 말도 안 된다, 수신료 내놔라”고 방송사를 고발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멍하게 즐겼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TV의 권위를 먹는 거고 세계 3대 진미라는 허영을, 7성급 가상세계를 눈으로 먹는 거다. 시청률만 나오면 방송은 계속 에드워드를, 캐비아 삼겹살을 찾는다. 미디어는 스타가 필요했고, 스타는 미디어를 이용했다. 에드워드 권은 짝퉁 고든 램지 놀이를 하며 스타가 된 자신을 즐겨왔고, 그것만으로 그는 유죄다. 당연히 몰락할 것 같던 에드워드 권이 아직 TV에서 건재한 걸 보면 미디어는 여전히 그가 필요한 모양이다.
“당신은 자격이 없습니다”
에드워드 권은 얼마 전 한 홈쇼핑을 통해 ‘에디스 키친’(Eddy’s Kitchen)이라는 브랜드를 내세우고 ‘에드워드 권 돈가스’를 론칭했다. 시청자는 스타 셰프라는 그의 권위에 의지해 돈가스를, 프로그램을, 혀와 눈으로 소비한다. 한국방송 <남자의 자격>과 <예스 셰프> 등 요리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인 그의 말은 권위를 지닌다. 그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2007년 고든 램지의 <헬스 키친>(Hell’s Kitchen) 출연자가 자살했다. 2010년 고든 램지의 <키친 나이트메어>(Kitchen Nightmare) 출연자도 자살했다. 리얼리티를 내세우는 쇼가 만들어낸 엽기적인 리얼리티다. 리얼리티쇼의 상품성은 대본상 계획된 돌발 상황을 리얼로 포장하는 데 있고, 그걸 얼마나 독하고 자극적으로 보여주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시청률과 돈에 목숨 거느라 사람 목숨까지 걸지 않기를 바란다. 독설 자체를 캐릭터 상품으로 만든 짝퉁 고든 램지 놀이를 계속하다간 <예스 셰프>도 사람 잡을까 걱정된다. QTV 홈페이지 <예스 셰프> 프로그램 소개에는 에드워드 권의 얼굴과 함께 “자격이 없다면 당신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씌어 있다. 경력이 허위로 밝혀진 에드워드 권이 먼저 TV를 떠나야 한다. 진정 실력을 증명하고 싶으면 방송이 아니라 주방에서 증명해라. 만약 에드워드 권이 <예스 셰프> 시즌3에 또 출연한다면 그 잔인한 슬로건부터 바꿔줬으면 좋겠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김재환 영화 <트루맛쇼> 감독 |
원본 위치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12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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