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시사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

  20년 정치를 하는 동안 언론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 정치인과 언론은 어느 정도 관계가 불편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들은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였다. 그들은 임기 내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했다. 나는 그 신문들과 끝없이 싸웠다. 그들은 몇 백만 부의 발행부수로 표현되는 막강한 미디어의 힘으로 나를 공격했다. 논리의 힘, 사실의 힘, 진실의 힘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싸움에서 대통령의 권력을 무기로 쓰지 않았다.  국민이 언론과 싸우는 데 쓰라고 그 권력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치인의 권리, 시민의 권리만 가지고 싸웠다. 사실의 힘, 논리의 힘, 진실의 힘만으로 싸웠다. 그렇게 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는 한,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독재 시대 그 신문들은 국가 권력에 종속되어 있었다. 정부가 준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 대가로 여러가지 특권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려고 눈물겹게 노력하고 희생을 감수한 기자들이 그 시대 언론의 역사를 빛나게 했지만, 이 신문사들은 부당한 기득권의 성벽 안에서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러우지면서 정치 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난 보수신문들은 시장 권력과 유착되었고 그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권력이 되었다.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언론 자유의 과실을 먹으면서,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고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나는 언론과의 관계에서 두 가지를 감당하려고 했다. 하나는 정치 권력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단절하는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언론이 누리는 부당한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인수위원회(인수위) 시절 기자가 사무실에 들어와 몰래 서류를 집어간 사건이 있었다. 기자들의 무리하고 일방적인 취재 활동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정부 기능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취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그릇된 기자실 풍토를 바꾸고 가판 구독 문제를 정리하려 했다. 기자들의 정부 사무실 무단 출입을 막고 공무원이 언론의 취재에 응하는 데도 원칙과 절차를 만들었다. 언론 일반과 마찰을 빚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더 용의주도하고 유연하게 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아도 다른 무슨 방법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지난날에는 '조중동'과 보도 내용의 진실성을 가지고 대결했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모든 언론사와 갈등 관계에 들어갔다. 이것은 내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언론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책임의식 부족이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사회적 공론의 장을 열고 공정한 토론의 장을 여는 책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정부의 언론 정책을 비판 할 때에도 최소한 사실에 관한 정부의 주장은 함께 보도해 주어야한다. 그런데 사실에 대해서까지 정부의 주장을 봉쇄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말했더니, 그 말은 아예 소개도 해 주지 않았다.

  언론은 시민의 권력이어야 한다. 시민을 대신해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감시하고 제어함으로써, 권력이 시민의 권리와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다. 그리고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공론의 장을 관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데 보수신문들은 과거에는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거기에서 풀려난 다음에는 이 권력 저 권력과 유착하고 제휴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제휴해서 가다가 김영삼 후보로 옮기면서 노태우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망가뜨렸다. 그 다음에는 이회창 카드를 쥐면서 김영삼 대통령을 완전히 밟아 버렸다. 공정한 심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내던지고 권력의 대안과 결탁해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진영의 분열에 힘입어 당선되었는데, 임기 내내 조중동과 갈등을 겪었다. 조중동은 절치부심 5년 뒤를 기약했는데 내가 대통령이 되자 아예 내놓고 편을 갈라서 싸웠다. 이 신문들은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터무니없는 거짓을 퍼뜨려 마침내 보수 세력의 역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다. 지금 보수정권과 유책해 갖가지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짓밟았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짓밟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은 선수가 아닙니다." 나는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정치 권력입니까? 시장 권력입니까? 시민 권력입니까?"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소망을 가졌을 뿐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 시민 권력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언론은 시장 권력의 대리인이나 정치 권력의 대리인으로 그 본질을 드러내도록 투명하게 만들어 가는 것, 이런 정도를 바랐을 뿐이다. 이것이 잘못인가. 이것이 지나친 욕심인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는 언론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언론의 부당한 특권,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유착을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 그래서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왜 언론과 싸워서 상황을 어렵게 만드느냐는 질책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맞서 싸우지 않았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들은 내가 굴복하기를 원했다. 최소한의 원칙도 일관성도 없이 마구잡이 공격했다. 저항하지 않고 매달려 다녀서 귀여움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은 언론이다. 선출되지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며 교체될 수도 없다. 언론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며 여론을 만들어 낸다.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진실도 거짓이 된다. 아무리 좋은 일도 언론이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 된다.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복잡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인데, 언론이 효과가 없다고 하면 정말로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대통령과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과 시민단체의 주장도 언론이 비위에 맞지 않는다고 외면해 버리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게 된다.

  성숙한 민주사회의 언론이라면 민주적 토론과 의사결정을 하는 내부 구조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있어야 스스로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되는 위험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없으면 시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권력이 된다. 누구도 그런 권력을 견제하지 못한다. 그 어떤 신념과 용기를 가진 정치인도 감히 도전할 엄두를 낼 수 없게 된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신문 독자인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려고 시도했다. 단순한 감정싸움이나 화풀이가 아니었다.

  어떤 분은 언론과 싸웠다고 질책했지만 다른 분들은 내가 언론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질책했다. 상식적 통념이 현실과 다른 경우가 많은데 언론 개혁 문제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 권력과 언론 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정정보도 청구를 하거나 법원에 민사소송을 낸 것을 가지고 언론 탄압이라고 한 것은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는 엄살에 불과하다. 내가 대통령이던 5년 동안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했다. 나는 다만,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


                                   노무현 자서전 - 운명이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