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일 전쟁의 승리로 타이완섬을 할양받은 일본은 타이완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1930년 일제 치하 대만 원주민 고산족의 반일봉기 사건을 담은 영화이다. 일제는 '문명화'라는 명목으로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인 사냥터가 파괴되고, 원주민 남자들은 벌목공으로 대대로 부족의 생활터전인 숲의 나무를 베어 받은 삯으로 하루하루를 술로 보내고, 원주민 여자들은 가정부가 되거나 일본인들의 시중을 들며 생활한다. 일제의 차별과 일본인들에 의해 '야만인'이라 불리우며 멸시받던 그들은 결국 부족의 '전멸'을 각오하고 일본을 상대로 봉기하기 시작한다.
'시디그 발레'를 제작하기 위해 무려 12년 동안 10번이나 시나리오를 고쳐쓰고, 대만 역사상 최대인 6억위안이 제작비로 소요되었다. 런닝타임만 무려 4시간이 넘는 그야말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1편과 2편으로 나누어진 영화는 다소 긴 런닝타임에도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 1편 후반부에서 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원주민 부족과 일본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액션과 특수효과로 다소 잔혹하다고 볼 수 있는 전투 장면은 더욱 보는 이를 몰입시킨다.
사실 대만에서 이 영화의 배경인 우셰 사건은 금기시 되는 소재라고 한다. 사건의 당사자인 고산족은 현재 대만에서 소수민족이라, 사회 주류의 관심에서 소외되었고, 우셰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한다. 이런 우셰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장장 12년 동안이나 준비하며 전작 '하오다이 7번지'의 상업적 성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아낌 없이 투자하여 '시디그 발레'를 제작한 위덕성 감독의 용기와 집념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오락이나 산업의 개념을 넘어 하나의 예술로써 사회와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영화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만한 일이다.
영화의 배경인 일제시대, 같은 일제 식민지의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써는 단순히 타국의 역사라고만 볼 수는 없다. 기실 영화의 역사적 배경인 1930년대, 한반도는 타이완섬과 마찬가지로 일본제국의 영토였다. 당시 사실상 '한 나라'에 속했던 타이완섬과 한반도를 생각하면 확실히 이 영화를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일본 군경의 타이완 점령의 과정을 보면서 역사적 데자뷰를 느끼지 않았던 한국인은 드물지 않나 싶다.
영화 속에서는 시대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원주민 부족간의 갈등과 이를 이용하려는 일본, 그리고 일본의 교육을 받고 일본 경찰이 되었으나 출신으로 인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 하는 원주민 출신 경찰 등. 이런 사회의 모습은 동시대 한반도인들이 겪었던 혼란과 고뇌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가 영화의 내적 완성도만이 아니라 영화 외적인 의미에서도 특별히 한국인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유다.
영화 속에서 일본인들은 원주민들을 줄곧 '야만인'이라고 부른다. '야만인'이라는 이름 속에 갇혀버린 모우나 루도와 그 부족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하지만 진정한 야만은 타민족을 야만인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이를 정당화하려는 당시 일본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는 야만의 시대라고 부를만하다.
모우나 루도는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며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원주민 족장이자, 부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젊은 시절 부족의 영웅으로 떠오르던 그는 일본의 타이완 점령 속에서 일본의 막강한 현대적 기술과 무력 앞에 현실적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체념의 세월을 보내던 그는 결국 꺼져가는 부족의 혼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그는 일본과의 싸움은 결국 부족의 파멸을 부를 것임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각오하고서도 일제치하에서 썩어가고 있는 부족의 혼을 지켜내고 조상들이 있는 무지개 너머로 가기 위해 그는 싸울 수 밖에 없었다.
모우나와 그 부족의 무장봉기에 있어서, 이 영화는 그 잔혹성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항적 폭력과 침략자의 폭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잔혹한 살육자체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특히 영화속에서처럼 군경뿐만 아니라 여성과 아이들 등 무차별적으로 행해지는 살육은 잔혹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단순히 일본군과 일본인을 악마화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5시간에 가까운 런닝타임을 견디기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나타난 원주민의 잔혹함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결국 일제에 의해 파괴되어가는 부족을 지키기 위해 촉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야만적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게 되었다. 시대에 의해 강요된 폭력이 모두를 파괴한 것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시디그족의 노래는 잔혹함으로 변하기를 강요당한 순수함에 바치는 아름답지만 슬픈 애가(哀歌)처럼 들렸다.이 영화는 관객에게 또다시 시대에 의해 폭력을 강요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위해 힘써주기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1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덴마크엔 왜 처녀가 없을까 (0) | 2014.02.15 |
---|---|
남자는 왜 너도나도 바람 피우려 드는 걸까 (0) | 2014.02.15 |
힐링캠프 83회 김성령과 김성령 남편 다시보기 (0) | 2013.02.26 |
부위별 최고 미인 합쳐 보면… (0) | 2013.02.20 |
'추적자'의 긴 여운 - 명대사 모음 (0) | 2013.02.20 |